생물유전자원 특허, 이제는 조심해야
생물 유전자원은 인류의 공동재산이었습니다. 각종 생물에 숨겨진 효능을 찾아서 이를 활용하는 것도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 상식으로 모두 공유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물 유전자원과 그에 대한 전통지식들이 더 이상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생물 유전자원도 엄연히 주권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한정된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고 그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면 이에 대한 이익은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의 ‘나고야 의정서(Nagoya Protocol)’가 2018년 8월 18일부터 발효되었습니다.
■ 나고야 의정서의 발효 배경은?
의정서가 발효된 배경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생물 유전자원 이용의 불합리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각종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및 천연물 신약 등을 제조하는 데 있어서 후진국의 생물자원을 일방적으로 이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후진국은 자국의 생물자원이 이용되어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해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요. 후진국 입장에서 보면 자국의 생물유전자원에 심지어 자국의 생물유전자원 관련 전통지식이 들어간 제품인데, 오히려 이를 통해 이윤을 챙기는 쪽은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라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하던 중 ‘생물 다양성 협약’ 즉,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며 여기서 나온 이익은 공평하게 분배한다”라는 내용의 나고야 의정서가 제10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됩니다.
나고야 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하려는 국가는 생물유전자원을 가진 국가에 사전 통보하고, 이를 이용해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에 이를 공유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전해져온 생물 유전자원에 대한 지식을 집대성한 '동의보감'과 같은 서적의 내용을 이용할 때도 이런 이익을 생물 유전자원의 보유국과 공유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바로 생물 유전자원의 도입 시기가 중요한데요. 나고야의정서 발효(2014년) 이후 들여온 자원은 당연히 해당하지만, 생물 다양성 협약 발효(1993년) 이전 도입한 자원은 이익 공유 대상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 나고야 의정서와 특허
그럼 나고야 의정서 발효 이후 들여온 생물유전자원으로 발명가 A가 새로운 천연물 신약을 개발한 뒤 “특허를 획득”했다고 합시다. 해당 생물유전자원을 보유한 국가가 A에게 유전자원 제공에 대한 이익을 나누길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허권은 ‘발명가의 창의성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발명을 소유 및 사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배타적 권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고야 의정서에 따르면, 그러한 특허가 생물유전자원 보유국의 유전자원에 대한 사용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생물유전자원 해적행위(piracy)에 반대합니다.
사실상 지금은 나고야 의정서에 생물유전자원 이용 선진 기술 보유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미가입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특허와 관련해서 WTO TRIPs(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돼 있어 뚜렷한 해결방안이 없습니다.
나고야 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는 생물유전자원으로 특허 출원 시에, 해당 생물유전자원의 출처를 공개해야 특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주장하고 있는데요. 생물유전자원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은 채 이를 이용하면 특허 출원을 거부토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의 입장에서는 “생물 유전자원 출처 공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특허 법과 별도로 사적 계약 당사자 간에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발명가가 특허를 창출하는 과정이 간소화되고 발명가의 권리 보호가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나고야 의정서가 발효된 상황에서 특허 논의도 있는 만큼, 생명공학과 신약 관련 특허를 출원하려는 발명가라면 나고야 의정서 상의 이익공유와 생물유전자원 접근과 관련된 각종 절차를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나고야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이더라도 나고야 의정서 관련 자국의 국내법을 정비하는 상황인 만큼, 이에 대한 대비 없이 특허 및 제품을 상용화한다면 훗날 분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생물유전자원 특허에 대해 세계 각국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알 수 있는 사례를 알아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 인도의 님나무를 아시나요?
인도 사람들은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님나무(Neem)를 즐겨 씹습니다. 참고로 님나무의 열매는 쓴맛이 있고 치질약이나 구충제로 사용되는데요. 씨 역시 맛이 쓰고 구충제로 사용되며 해독작용이 있습니다. 아열대 및 열대지방에서 많이 자라며 그 50% 이상이 인도에 서식하고 있는데요. 항균 및 살균 작용이 뛰어나서 많은 기업에서 님나무의 파생물로 제품을 만들어 '특허'로 소유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미국은 님오일로부터 만들어진 살균제에 대한 특허를 승인하게 되는데요. 이에 대해 인도에서는 “님나무 사용 관련 지식은 수십 년간 인도와 그 밖의 지역에서 사용돼온 전통지식이고, 아무런 보상 없이 가로채는 것은 생물 해적행위이며 동시에 특허 요건인 진보성이 결여되었다”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특허권은 철회되죠.
해당 사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나고야 의정서 체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요. 정부와 이해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업계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비를 확실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자료인용 : 특허청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