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프로그램도 특허받을 수 있을까?
특허받은 발명이라고 하면 흔히 유용한 기계 장치, 또는 인체에 큰 도움이 되는 의약품 등 보고 만질 수 있는 유형물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특허 제도가 처음 시행될 무렵만 하더라도 이와 같은 물건 또는 물건을 제조하는 방법이 주된 특허 보호 대상이 되었는데요. 그러나 오늘날 산업 기술이 발전하고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형의 컴퓨터 프로그램 역시 특허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 목소리는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이후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 컴퓨터 프로그램은 자연법칙인가?
특허권으로 보호되는 대상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이어야 하지, 자연법칙 그 자체는 발명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이미 자연 상태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법칙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특허 보호 대상이 아닌 것이죠. 자연법칙은 후일 연구자들이 더 나은 기술개발을 하기 위해 기초도구로 삼아야 하는 것이므로 특허와 같은 독점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이유가 됩니다.
여기서 컴퓨터 프로그램 역시 자연법칙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시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코딩 언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수학 공식에 기반을 둔 순서도가 복잡해진 것입니다. 수학 공식은 이미 선재한 자연법칙의 일부가 아니냐, 따라서 컴퓨터 프로그램은 특허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발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한 개발자는 발명자가 아닌 응용된 수학 원리를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미국의 Benson 사건
하지만 미국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산업적으로 매우 유용하기에 특허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관련 산업이 융성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커졌습니다. 이러한 논란이 가열되다가 처음 미국 연방대법원의 사건으로 표면화된 것이 바로 Gottschalk vs. Benson이라고 불리는 특허 분쟁 사건인데요.
여기서는 발명자가 2진화 10진수 표기 프로그램을 발명하여, 특허 출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숫자를 10진수로 표현하는데, 컴퓨터는 0과 1 두 숫자만으로 가동하는 2진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인간 지각은 10진수에 익숙해져 있으니, 컴퓨터가 사용하는 2진법과의 괴리를 메꾸고자 2진화 10진수 표기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예컨대 42를 10진수로 표기하면 ‘42’라고 표시하고, 이를 10의 자리와 1의 자리 각각을 2진법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4를 이진수로 표시하면 ‘100’, 2를 이진수로 표시하면 ‘10’이 되므로, ‘100’과 ‘10’을 각각 10의 자리와 1의 자리에 배치하게 됩니다.
발명자는 이러한 표기법을 구현한 프로그램이 컴퓨터와 관련한 진단기기의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데 기계가 작동하면서 인간이 직관적으로 인지하기 쉽다는 점을 주장하였는데요. 이에 대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발명 내용은 아직 추상적 아이디어, 수학공식의 수준에 머물렀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상태에서 아직 발견되지는 못하였으나 이전부터 존재한, 2진화 10진수라는 자연 원리를 독점하려 하는 것은, 자연법칙 그 자체를 독점하려는 것이어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 특허를 부여한 Diehr 사건
그러다가 1981년에 이르러 컴퓨터 프로그램 발명과 관련한 획기적인 판결이 이뤄집니다. Diehr라는 발명자는 고무를 성형하는 기계를 발명하여 특허 출원을 하였는데요. 고무를 성형하는 과정에서 몇 시간 동안 몇 도의 온도와 압력이 최적인 조건이 되는지를 아레니우스 수식을 기반으로 컴퓨터가 계산하여 알아내고, 이 조건에 따라 고무 성형기계 안의 설정온도와 압력, 시간을 변화시키는 기계였습니다. 여기서 아레니우스 수식이란, 스웨덴의 과학자 아레니우스가 열과 압력, 시간의 관계에 대하여 밝힌 자연법칙입니다.
아레니우스 수식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탑재하고 이를 고무성형하는 기계에 연결하여 이 수식이 내놓은 결과에 따라 성형기계의 작동을 제어하는 발명품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종전의 Benson 사건과 마찬가지로 아레니우스 수식이라는 자연법칙을 독점하려는 시도이므로 특허를 부여하여서는 안 된다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종전의 Benson 사건과는 달리 이 발명은 자연법칙 자체를 독점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무성형하는 방법으로 그 법칙의 이용이 제한되고,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특허발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명이 되는 기준
연방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기준은 바로 ‘대상의 물리적 변환’입니다. 알고리즘 자체로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고, 반드시 이와 결부되어 물리적으로 유형적인 대상이 변화되어야만 특허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학자들은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판단이 아마도 특허 부여 대상을 넓힘으로써 당시 태동하던 컴퓨터 산업을 지원하려는 정책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 경제는 1970년대의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컴퓨터 등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 노선을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에의 영향
이와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특허받는 발명일 수 있다는 미국의 판단이 있은 후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러한 추세를 따르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내용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부착된 객체에 변환이 이뤄진다면 특허받을 수 있다는 특허성 판단 기준을 수용하였습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대법원의 97후2507 판결인데요.
이 판결에서 대법관들은 공작기계를 제어하는 수치 제어 장치의 입력 포맷에 관한 발명에 대해 “하드웨어 외부에서의 물리적 변환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자연법칙이 아닌 자연법칙을 이용한 발명이 된다"라고 판결하여, 특허부여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판시가 있은 후로, 특허청은 컴퓨터 프로그램 발명을 심사할 때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오고 있습니다.
이후로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 발명의 출원이 이루어져 많은 수가 등록되었습니다. 최근 사례로는,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울산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통증 개선을 위한 훈련제공 시스템과 방법을 제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출원하여 특허 등록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특허 제10-1950342호). 통증을 느끼는 환자를 대상으로, 인체의 온도를 측정하여 이 정보를 기반으로 통증개선훈련을 설계하는 방법을 담은 특허입니다.
지금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이 특허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과 그와 관련한 판결을 소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논쟁은, 연방대법원이 ‘프로그램과 연결된 대상의 물리적 변화’ 기준을 제시하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수용되면서 일정 부분 정리되었습니다. 알고리즘 그 자체로는 특허받기 어렵고, 반드시 이에 연결된 물리적 대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 꼭 기억해 주세요. (자료인용 : 특허청, 학술저널, 한국비교사법학회 육소영 <컴퓨터 프로그램의 특허성> 비교사법 10권 2호, 국가법령정보센터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출원발명의 자연법칙 이용성을 인정한 사례> -- 대법원 2001. 11. 30. 선고 97후2507 판결 [거절사정(특)] [공2002.1.15.(146),210])